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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2집

이 시집은 36년간 인천 내항문학회를 일궈온 장승열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본 단풍 뒤에 숨어 있는 “소멸의 단계, 허무의 단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해탈 직전의 긴장된 모습과 일상을 탈피하는 깨달음의 모습, 또 깨달음에 못 미친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을 주제로 한 선문답과 선시 형식을 빌려선 쓴 65편의 시가 2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65편의 시 중 <길 ― 단풍․2>란 제목의 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을 / 등지고 떠나는 발걸음이야 오죽하랴 // 마을을 감돌아 / 고개 위로 사라지는 길 // 그 고개 끝에 잠시 멈춰 서서 / 석양처럼 / 모질었던 마음을 붉게 토해내고 나면 // 팔랑팔랑 / 육신일랑 바람처럼 좀 가벼워질까 // 고갯마루 빈..
이 시집은 36년간 인천 내항문학회를 일궈온 장승열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본 단풍 뒤에 숨어 있는 “소멸의 단계, 허무의 단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해탈 직전의 긴장된 모습과 일상을 탈피하는 깨달음의 모습, 또 깨달음에 못 미친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을 주제로 한 선문답과 선시 형식을 빌려선 쓴 65편의 시가 2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65편의 시 중 <길 ― 단풍․2>란 제목의 시에서 시인은 “이 세상을 / 등지고 떠나는 발걸음이야 오죽하랴 // 마을을 감돌아 / 고개 위로 사라지는 길 // 그 고개 끝에 잠시 멈춰 서서 / 석양처럼 / 모질었던 마음을 붉게 토해내고 나면 // 팔랑팔랑 / 육신일랑 바람처럼 좀 가벼워질까 // 고갯마루 빈 가지에 걸리는 그믐달처럼 / 가지 끝에 매달리는 쓰린 기억을 / 지나는 바람결에 // 명주 색실로 풀어서 날리고 나면/ 두둥실두둥실 / 육신일랑 구름처럼 흘러갈 수 있을까” 하고 노래한다.

그리고 <자서(自序)>를 통해 다음과 같은 창작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 단풍 1집 증보판입니다.

▶ 단풍이란 나무들이 자라면서 봄과 여름의 격동기를 지나고 가을의 내공을 축적해서 겨울의 문턱에서 마지막 성숙의 빛을 뿜어내는 장엄한 의식입니다.

단풍의 뒤에는 소멸의 단계, 허무의 단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풍에서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해탈 직전의 긴장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꼭 불가가 아니더라도 어느 종교에서나 또는 어느 삶에서나 마음의 성숙된 모습이 현상으로 나타난다면 단풍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상을 탈피하는 깨달음의 모습이기도 하고 깨달음에 못 미친 안타까운 부끄러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 선문답禪問答의 형식을 빌려서 현대시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선문답은 스님들의 높은 정신세계를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해대화로 표현하고 확인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습니다.

속인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대화법입니다. 그러나 선문답에는 분명 시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비록 스님들의 정신 수양 단계를 검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고도의 상징과 비유를 내포하고 있어 그 자체가 시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력 있는 조상들의 유산이라고 아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문답 형식을 흉내 내어 일반인들도 접근하기 쉬운 내용으로 시도해 보았습니다.

▶ 선시禪詩 형식을 빌려서 시에 적용해보려고 했습니다.

이미 많은 시인들이 선시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시도를 해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성과를 거둔 시인들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선시禪詩야말로 관념시觀念詩의 백미白眉이며, 어찌 보면 관념시 중에서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고려 때 백운경한선사白雲景閑禪師 이후 우리나라 불가에 정착된 시형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체질상 수 십년 동안 관념시만을 추구해 온 저로서는 선시가 여간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승다운 능력은 없고 표현도 따라가기 어렵지만 현대시와 접목해서 형식만을 선시에서 빌려보기로 했습니다. 내용은 그저 일반 서민들이 쉽게 접근해서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생활을 담아 보려고 했습니다. 가히 어설픈 행동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 관념시觀念詩는 정신세계를 주로 형상화하는 시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거의 모든 시가 관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시들 중에는 이런 정신이나 철학이나 사상적인 면보다도 언어적 기교로 감정이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주력하는 시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현대시의 주류는 이러한 이미지 시, 감각적인 시에 의해 활발하게 이끌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시들은 시의 생명을 언어에 두고 ‘언어의 기교’를 상당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관념시를 보면 우선 정신세계를 표현한다는 자체가 너무 무겁고 또 시어로서의 신선한 매력도 별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시, 이미지의 시를 감상할 때 ‘언어의 기교’를 중심으로 신선한 표현에 초점을 두듯이 관념시를 감상할 때에는 거기에 맞는 감상 방법을 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 방법을 저는 ‘사유의 기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시를 감상할 때 감각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느끼는 시는 ‘언어적 기교’를 통해 참신한 표현들이 돋보일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정신적인 감동을 수반한 시에서는 ‘사유의 기교’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유의 기교를 고도로 발휘하면 선시와 같이 접근하기 힘든 난해한 시가 되듯이 감각적인 시들도 언어적 기교를 고도로 발휘하면 역시 난해한 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극복해 보려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 내항문학內港文學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소모임을 통해서 이 작품들에 대해 같이 토론하고 연구하고 비판을 아끼지 않은 회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09년 여름

삼산 기슭에서 저자



정승열(丁承烈)

이 시집의 저자 정승열(丁承烈) 시인은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79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36년간 인천 내항문학회 회원으로 동인활동을 해왔으며, 시문학회 회원, 새얼백일장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새가 날개를 퍼덕여도 날개를 주지 않았다>, <단풍 1집>이 있으며 인천예총 예술인상, 인천광역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09년 인천광역시 삼산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후 현재 한국문협 인천광역시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메일 : mmm812@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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