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응락 시집 <기도하는 나그네>는 한응락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한응락 시인이 문단 등단 이후 각 문예지에 발표한 117편의 시가 4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한응락 시인의 고향은 평양이다. 그러나 기웃거릴 수조차 없는 아득한 곳일 뿐 아직 떠도는 나그네이다. 그의 표현대로 <비렁뱅이> 시절을 거치며 험한 세월을 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법조인으로 우뚝 섰다. 그렇지만 그가 살아오는 동안 가슴 한 쪽이 늘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인천 땅이 고향이 아니기 때문일까?
갈 수 없는 고향은 가슴 속 깊숙이 묻어 둔다고 해도 무시로 돋아나는 것이 그리움이요, 슬픔이다. 또한 영혼의 빈곤으로 인해 몰려드는 허기이다.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신을 찾았고 끝없이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고 말았다. 저명한 법조인이며 장로인 그가 시인이 된 것은 결코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시를 쓰고 있으며 시인이 되었을까?
시가 좋아서 / 시들을 읽으며 / 시라고 써 왔는데 / 시인이 됐단다 // 써 놓고 보면 / 덜 익은 과일처럼 / 떨떠름한 맛뿐인데 / 그래도 / 익었던가 // 시상을 떠올리면 / 눈앞은 / 안개가 뒤덮여 / 정리하기 힘겹다 // 하지만 / 머리로 쓰는 / 말장난 글재주가 아니라 / 가슴으로 / 마음을 전하자 //
―〔시인〕 전문
절대 논리인 <법>과 절대 신앙을 요구하는 종교의 <규범>에는 상상력의 개입을 거부한다. 세상을 향해서나 자신을 향해 할 말이 많은 그의 상상력이 법과 종교의 틀에서 묶여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가슴 속에서 거칠게 꿈틀거리는 과거와 답답한 현실, 안개가 뒤덮인 듯 뿌연 미래를 닦아 아픔이 아닌 소중한 기억으로, 샘물처럼 맑은 현실, 투명한 미래로 바꾸려는 의지요 몸짓이 그의 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바로 기도이다.
아침에는 / 소망을 헤아려 / 기도하게 하소서. / 밝은 햇살 따라 / 기쁜 날 위해 / 맑은 마음으로 / 예비하게 하소서 / 한낮에는 / 피운 꽃 가늠하며 / 기도하게 하소서. / 나만이 아니라 / 남에게도 / 곱게 보이라고 / 가꾸게 하소서 / 저녁에는 / 열매 살피며 / 기도하게 하소서. // 잘못 따라 / 짚어가며 고쳐보고 / 감사함을 / 잊지 말게 하소서. //
―〔하루〕 전문
한응락 시인의 첫 시집인 <기도하는 나그네>의 시편들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여정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은 온통 아픔뿐이다. 너무 일찍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으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순간들의 연속이다.
끊어진 인도교 아래서 / 헤엄쳐 건너며 / 살겠다고 온갖 힘 다 쓴 곳 / 서울중학 교복도 / 책가방도 / 운동화마저 버리고 / 시체에 부딪치고 / 붙잡은 판자쪽 빼앗기며 / 나는 기를 쓰고 건넜다. / 스러져 누웠다가 / 지치고 허기진 채 / 눈물 삼키며 맨발로 / 걸어 온 / 인천까지 80리 길.//
―〔한강 인도교〕 전문
《6․25 때 / 14살 중학 1년생》이던 시인이 직접 겪은 일이다. 단 한 군데의 기교나 수사를 쓰지 않은 리얼리티가 오히려 빠르게 전달되고 깊은 울림을 준다. 까맣게 잊혀졌던, 아니 잊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흑백 필름으로 투사시키고 있다.
(한응락 시집 <기도하는 나그네> 작품 해설에서)
한응락(韓應洛)
이 시집의 저자 한응락 시인은 평양에서 출생했다.
6.25 때 남하하여 영종초등, 인천중고교를 거쳐 경희대 법대(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사법행정학 석사)을 졸업했다.
대법원 비서관을 역임했으며, 인천지방검찰청 보호관찰위원, 동인천로터리클럽 이사, 인천법무사회 이사, 인천기독법조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5년 계간 <문단> 신인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인천광역시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계간 <문단> 동인회 회장, 산성교회 장로,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응락 법무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시집으로 <꽃잎이 떨어진 뒤에도>, <나그네의 편지>, <나그네의 기도>, <나그네의 메아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