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소개
1. 필사본의 출전과 편역본의 출전
계축일기는 조선시대에 창작된 궁중 수필로 <서궁록(西宮錄)>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당초 2권 1책 한글 필사본으로 구성된 이후, 낙선재본(樂善齋本) <계튝일긔>와 홍기원본(洪起元本) <서궁일기> 두 가지가 전해져 내려왔는데, 두 책 모두 원본이 아니며, 내용을 비교해 보면 이전에 원본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또한 <서궁일기>의 내용이 <계축일기> 외에 다른 것이 합철되어 있어 완전한 이본이라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낙선재본은 6·25 때 소실되었고, 《조선역대여류문집》에 수록된 영인본만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본서에 수록한 <계축일기>는 1973년 <대제각>에서 펴낸 《한국고전총서》 제4권 중 《고대여류문학선》에 수록되어 있는 <계축일기> 영인본(낙선재본)을 가지고 한자를 병기하지 않은 한글 <독서본>과 어려운 고어와 한자 어휘 풀이를 함께 병기한 <주석본>으로 나누어 편역한 뒤, 두 편을 한 책에다 함께 수록했다.
고서 필사본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계축일기는 작가가 집필 당시 모필로 한지에 한 자 한 자 써내려 갈 때는 한 글자도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순 언문(한글)으로 글을 완성한 작품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구성된 한글 작품으로 이해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하게 그 말뜻을 풀이하면서 세밀하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본 작품 집필에 구사된 수많은 문장 속의 낱말 중 60∼70%에 해당하는 어휘(단어)들이 당초에는 한자어에서 파생된 단어들이고,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에는 작가가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거나 구와 절, 그리고 대화문이나 한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다 문장 부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 없이 한지 한 장을 꽉 채우듯이 한 장 한 장 써내려간 작품이라 국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나 전문가가 아니면 이 작품 속에 나오는 말뜻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또 이 작품은 창작될 당시 조선 민중이나 궁중에서 생활하는 남녀 궁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일상어를 그대로 서술하는 형식으로 문장을 구성했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구사되는 몇 몇 어휘는 국문학을 전공한 교수나 박사들마저 그 당시 궁인들이 사용하던 속어(俗語)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전체 문맥을 살펴보며 대강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하는 식으로 의역했을 뿐 정확하게 말뜻을 정의할 수 없어서 <미상>으로 처리한 단어도 여러 개가 있다.
그 만큼 이 작품의 필사본을 일반 독자가 직접 읽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종이책의 경우는 각 면마다 하단이나 측면에다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각주나 측주 처리를 하고 있으나 그렇게 편집해 놓은 책들을 읽을 때마다 가독성에 침해를 받아 짜증이 나고 독서 속도도 떨어지게 만들어 우리 고전 문학 작품 전체적인 선입견이나 접근성마저 떨어지게 만든다.
이러한 종이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본서 전자책에서는 비록 한자어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지만 괄호 속에다 원말인 한자어를 함께 적지 않은 한글 <독서본>과 한글 한자를 함께 병기한 <주석본>으로 구분해 편역 작품을 두 편으로 나누어 수록했다. 두 편 모두 작품의 줄거리 상으로는 하등의 차이가 없으나 <독서본>은 한자 주석을 붙이지 않은 원본 필사본의 현대어 편역본이라 독서 속도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주석본>은 내용 파악은 물론 어려운 한자어 낱말의 말뜻까지도 세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한자까지 병기해 말뜻을 풀이한 주석까지 붙인 편역본이다.
종이책에서는 지면과 제작 경비의 폭발적 증가로 시도가 불가능하나 전자책에서는 제작비용에 제한을 덜 받으므로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개인 취향대로 독서본이나 주석본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해서 읽으며 착오 없기 바란다.
2. 작자에 대한 가설과 이설
널리 알려진 대로, <계축일기>는 조선 시대 3대 궁중 문학의 하나로, 계축년(광해군 5년, 서기 1613년)에 발생한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폐비 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의 비사를 기록한 글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해서는 종래의 통설인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 즉 어느 궁녀라는 설(說) 외에 인목대비 자작설(自作設)과 대비의 친딸인 정명공주(貞明公主)와 그 측근 나인들의 합작이라는 이설도 있다.
3. 계축일기의 특징
실록을 제외하면 광해군대와 조선 중기의 정치적 · 사회적 · 문화적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언문(한글)으로 씌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공빈 김씨의 소생인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소생인 영창대군을 둘러싼 당쟁을 당대의 조선 민중과 궁중 여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상용어를 구어체로 서술한 글이다. 묘사보다는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당시의 치열한 당쟁의 이면을 이해하는 언어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3. 작품 줄거리
계축일기는 인목대비가 선조의 계비로 책봉되던 때부터 인조반정이 일어날 때까지 20여 년에 걸쳐 광해군과 영창대군을 둘러싼 사건들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인목대비는 선조의 첫 왕비 의인왕후가 선조 33년에 승하하자, 2년 후인 선조 35년에 선조의 계비가 되었다. 그 후, 선조 36년에 정명공주를 낳았고, 선조 39년에 영창대군을 낳았다.
선조는 첫 왕비에게서는 왕자를 낳지 못하고 후궁들에게서 왕자 13명을 낳았는데, 그들 중 후궁인 공빈 김씨의 2남 광해군 휘를 일찍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 후, 선조가 57세 나이로 승하하자 광해군이 조선 제15대 왕으로 즉위했는데, 즉위 초 광해군은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하여 친형인 임해군을 죽게 하고, 광해군 5년(1613)에는 인목대비의 부친인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여 모반을 꾀했다.”는 무고를 빌미로 김제남 부자를 반역죄로 처단한다.
또 인목대비는 폐위시켜 서궁(지금의 덕수궁)에 가두는 한편, 9살 된 어린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켜 가두었다가 참혹하게 죽인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인목대비는 인조반정(1623)으로 복위된다.
4. 작품 속 시대 배경과 역사적 사실성
계축일기는 <일기>라는 제목과는 달리 그 내용이 시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문체 또한 <권지1>과 <권지2>가 다르고, 누락이나 오기 등 필사상의 문제가 원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관한 역사적 · 정치적 · 사회적 사건 사고들을 객관적으로 한번 반추하면서 이 작품의 내용들과 따져봐야 어디까지가 역사적 진실이고, 어디까지는 역사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과장 · 왜곡된 <한풀이> 픽션인가를 구분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광해군의 즉위 전인 선조 말엽은 홍여순(洪汝諄)의 대사헌 천거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갈린 소북(小北)과 대북(大北) 중 유영경(柳永慶)을 수령으로 하는 대북이 권력을 잡은 시기이다. 하지만 대북은 1608년 선조의 사망을 기점으로 유연경이 사사(賜死)되는 등 세력을 잃었고, 1612년 김직재의 난을 정점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즉위 초 광해군은 이원익(李元翼) 같은 당색(黨色)이 적은 원로대신들을 등용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초당파적 정치를 구상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외척인 유씨(柳氏)와 정인홍(鄭仁弘) · 이이첨(李爾瞻) 등 소북의 득세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후 광해군의 모든 행보는 이들 소북과 운명을 같이하게 되었다
공동체가 된 광해군과 소북의 운명은 1623년 김류(金流) · 이귀(李貴) · 김자점(金自點) 등 서인이 주동한 인조반정으로 마감되었다. 이후 광해군은 폐위되어 유배되고, 소북은 몰락하여 권력의 음지를 전전하다가 효종과 현종 때 모두 남인에 흡수되었다.
그런데도 계축일기에서 묘사되는 몇몇 부분은 사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 진위를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일기>라고 적었으면서도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작품 내용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작품이 가해자 측(광해군 측)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는 인목대비 측근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 서인(西人)이 득세한 인조반정 이후에 완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작품 속에서 거론되는 특정 사건들은 <선조실록>과 <광해군일기> 같은 정사와 비교하면 너무 많은 부분이 왜곡 과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광해군 재위 15년 동안 피해자인 인목대비와 그 측근 나인들은 육체적 · 정신적으로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핍박과 서러움을 당했고, 피해자 측의 대표격인 인목대비는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잃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자신 또한 폐위되어 서궁에 유폐당하는 고초와 멸시를 당해야만 했다. 계축일기가 이러한 핍박과 고초를 당한 피해자 측 <원한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소설적 형식을 차용해 극적인 부분은 역사적 사실 따위에서 벗어나 핍박을 당하던 시절의 감정 세계를 소설적 극대화를 위해 과장 왜곡 시킬 수도 있다.
또 선조실록이나 광해군일기 같은 정사마저도 우리를 의심스럽게 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서술로 처리되었으나 그 어설프고 장난 같은 인조반정 모의에 관한 사전 보고와 풍설이 당시 궁중 내부에까지 퍼져 있었는데, 선조실록이나 광해군일기 같은 정사 속에서는 그렇게 치밀하고, 외교, 국방, 문화적으로 많은 치적을 남긴 광해군이 자기 목숨과 왕권을 노리는 반정에 관한 정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무능하고 무관심할 수 있었으며, 그런 무능과 무관심이 인목대비에게 다시 왕후로 복위되는 영광을 안겨줄 수 있었는지, 그 시대의 정사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혼돈을 불러오게 하는 작품이 바로 계축일기이다.
5. 문학사적 의의
계축일기의 문학사적 의의로는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3대 궁중문학으로서 소설문학과 수필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중기의 궁중에서 전개되는 풍속과 인정, 그리고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 점, 그 당시 조선 민중과 궁중 여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구어체의 상용어를 풍부하게 구사하며, 종래의 한문 고사와 변려체 문체를 피해 왔다는 점 등이 다른 고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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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어느 궁녀가 쓴 것으로, 궁인의 이름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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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역자 소개
서동익(徐東翼)
소설가. 1948년 경북 안강(安康)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성장기를 보내다 1968년 해군에 지원 입대해 7년간 현역으로 복무했다. 만기 전역 후,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후 남북 관계와 북한 동포들의 삶을 연구해 오다 1997년 국가정보대학원을 수료했다.
1976년 중편소설 <갱(坑)>으로 제11회 세대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등단 후 남북 분단으로 인한 <한국현대소설문학의 반쪽현상>과 <왜소성>을 발견, 이를 극복하는 장편소설을 집필하다 북한 동포들의 일상적 라이프스타일과 생활용어 속의 정치용어, 경제용어, 은어 등에 막혀 실패했다. 이후 직장을 대북전문기관인 자유의 소리방송(전문집필위원), 통일부(학술용역), 국방일보(객원논설위원), 인천남동신보(주간 겸 논설위원), 사)북방문제연구소(연구이사 겸 부소장) 등에서 근무하며 30여 년간 북한을 연구해 왔다.
주요 북한연구저서로는 <북에서 사는 모습(북한연구소, 1987)>, <인민이 사는 모습 1, 2권(자료원, 1996)>,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사회주의헌법 문장 연구(사단법인 북방문제연구소, 2007)>,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조선로동당 규약 문장 연구(북방문제연구소, 2007)> 외 다수 논문이 있다.
문학창작집으로는 서동익 소설집 <갱(坑, 자료원, 1996)>, 장편소설집 <하늘 강냉이 1∼2권(자료원, 2000)>, <청해당의 아침(자료원, 2001)>, <퇴함 1∼2권(메세나, 2003)>, <장군의 여자 1∼2권(메세나, 2010)>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청해당의 아침>이 1960년대 한국의 문화원형과 전후세대의 삶을 밀도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선정되어 2010년 6월 1일부터 한 달간 KBS 라디오 드라마극장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국내는 KBS AM 972khz로, 국외는 KBS 한민족방송망을 타고 중국 동북3성 ․ 러시아 연해주 ․ 사할린 ․ 일본 ․ 미국 등지로 방송된 바 있다.
고소설 편역작품집으로는 강도몽유록(OLIN, 2013), 달천몽유록, 원생몽유록, 안빙몽유록, 수성궁몽유록, 피생명몽록, 금오신화(OLIN,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