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소개
원한을 품고 죽은 두 처녀 귀신과의 만남을 다룬 설화 <최치원> 전은 중국과 국내의 문헌에 나란히 수록되어 있었던 관계로 일찍부터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왔고, 이 설화의 이름만도 최치원 설화, 최치원전, 쌍녀분, 쌍녀분 설화, 쌍녀분기, 선녀홍대, 선녀홍대 이야기 등 대여섯 가지가 넘게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가 본격적으로 학계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40년 이인영에 의해 『태평통재』 권68에 실린 <최치원>이 발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전기적 성격이 강한 『금오신화』와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 작품은 이인영의 논의 이후 항상 “우리나라 고전소설사의 출발을 어느 시대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국 문학사에서 소설의 발생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립되는 두 견해가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부터라는 견해와 신라말 고려초의 전기(傳奇)에서부터라는 견해, 특히 <최치원>을 최초의 한문소설로 보는 견해이다.
이 때문에 <최치원>에 대한 논의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소설적 성격을 중심으로 작품의 작자와 창작 시기를 밝히는 연구 위주로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연구 사료의 부족 등으로 그 결과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학설로 정해지지 못한 채 다양한 논의만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설화는 조선 성종 때 성임(成任)이 엮은 『태평통재(太平通載)』에 <최치원((崔致遠)>이란 제목으로 그 본문이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태평통재』는 중국 송대의 『태평광기』를 본떠 조선 고금의 기문기설(異聞奇設)을 모아 수록한 책이다. 이 작품의 말미에는 <출신라수이전(出新羅殊異傳)>이라는 출처를 밝히고 있어 이 작품이 유실된 『신라수이전』에서도 수록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신라수이전』역시 신라 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대동운부군옥』에도 <선녀홍대(仙女紅袋)>라는 제하(題下) 비슷한 내용을 축약 인용한 듯한 짤막한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선녀홍대>는 <최치원>보다 약 5분의 1정도 길이가 짧으며 첫부분과 끝부분이 생략되어 있고 다수 등장하던 한시가 대부분 빠져 있으나 기본 줄거리는 <최치원>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최치원>은 『신라수이전』에 처음 수록되었던 것이 『태평통재』에 완문으로 실리게 되고, 이를 다시 『대동운부군옥』으로 옮기면서 그 내용이 많이 축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또한 중국 남송 시기에 편찬된 『육조사적편류(六朝事迹編類)』의 <쌍녀묘> 조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요약 ·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출전을 <쌍녀분기>로 밝히고 있다. 「쌍녀분기」는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치원> 혹은 민간에 전승되던 <쌍녀분 이야기>를 소재로 취해서 지어진 것으로 김건곤(「신라수이전」의 작자와 저작배경, 『정신문화연구』, 3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은 보고 있다.
<쌍녀분기(雙女墳記)>는 작품의 구비전승 과정 중 와전되어 두 여인의의 출신지만 바뀌어 있을 뿐 <최치원>과 기본 줄거리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약 20여 수의 한시로 구성된 쌍녀분기는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하여 율수현위로 부임한 20세 전후의 나이에 난징(南京)에서 남쪽으로 약100Km 떨어진 장쑤현 초현관(招賢館) 앞에 있는 쌍녀분(雙女墳)과의 기이한 인연을 담은 설화로 고려 때 박인랑이 지은 한국 최초의 설화집인 <수이전(殊異傳)>에 기록되어 있고, 당나라의 <육조사적편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헌에서도 <쌍녀분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 설화는 무덤에서 나온 두 여자와 시를 주고받으며 하룻밤 정을 나누는 인귀교환설화(人鬼交歡說話)가 기이함의 특징이다. 인귀교환설화란 살아 있는 사람과 환생한 혼령이 육체적 관계를 맺는 기이한 이야기다.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도 이 설화 유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또 원한을 푸는 과정에서 삽입 시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인간과 귀신 간의 사랑이라는 환상적 주제를 서사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시를 통해 이들의 정서가 구체적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서사의 극적 요소가 강화된다. 이처럼 시 쓰기를 통해 원한을 푸는 모습은 시에 대한 당시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다. ‘시’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소통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을 통해 당시 시가 수행한 심리적, 사회적 역할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에는 다양한 용사의 제법이 활용되는데, 이를 통해 문장가로서 최치원의 능력과 시 쓰기의 방법에 관해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이 설화의 가장 논란거리는 <현대장르> 문제이다. 설화냐, 전기냐, 전기소설이냐 등으로 의견이 나뉜다. 조동일은 “전기(傳記)를 문학적 수식(修飾)을 의도적으로 가미해 글로 정착시킨 설화.”라고 정의했다. 문학적 수식 때문에 설화와는 구분되지만 자아와 세계의 대결 양상은 설화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 소설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최치원>도 전기로 분류했다. 이것이 여지껏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주장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 찾아보았는데 김택환은 전기소설이라는 것은 <소설>이라고 하기 어렵고 설화와 소설의 중간 형태인 바, <전기소설>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그냥 <전기(傳記)>라고 불러야 옳다는 견해에 반론을 제기한다.
먼저 그는 성립기의 전기소설은 우리나라 소설 발달사의 첫자리에 놓이는 만큼, 후대의 보다 발전된 전기소설이나 다른 제 양식의 소설과 비교해 볼 때 미숙한 면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인접 장르인 설화와 매우 특별하고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눈으로 보면 성립기의 전기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설화에 가까운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설화의 문학사적 의의로는 우선 서사구조 전반에 깔려 있는 환상적 애정 양상이다. 이는 이후 김시습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과 비교될 수 있는데,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마음속의 이상적 애정 양상을 묘사한 것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은 어쩔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이후 낭만적 열정은 유교적 규범을 넘어서는 고전서사에 주제로 계속 등장한다.
다음으로, 시체 문용(詩體 文用)의 이원적 구성으로 시로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 점이다. 시에 대한 인식과 최치원의 시에 나타난 다양한 용사(用事)의 제법이 당시 글쓰기의 전범과 다양한 기교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또 설화의 내용 중 주인공들의 의사 표시가 대부분 한시로 나타나 있어 전체적으로 대략 20여수의 시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설화 속의 삽입 시는 후대 한문소설류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데에서 이 설화의 문학사적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작가 소개
작자 미상.
▣ 편역자 소개
서동익(徐東翼)
소설가. 1948년 경북 안강(安康)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성장기를 보내다 1968년 해군에 지원 입대해 7년간 현역으로 복무했다. 만기 전역 후,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후 남북 관계와 북한 동포들의 삶을 연구해 오다 1997년 국가정보대학원을 수료했다.
1976년 중편소설 <갱(坑)>으로 제11회 세대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등단 후 남북 분단으로 인한 <한국현대소설문학의 반쪽현상>과 <왜소성>을 발견, 이를 극복하는 장편소설을 집필하다 북한 동포들의 일상적 라이프스타일과 생활용어 속의 정치용어, 경제용어, 은어 등에 막혀 실패했다. 이후 직장을 대북전문기관인 자유의 소리방송(전문집필위원), 통일부(학술용역), 국방일보(객원논설위원), 인천남동신보(주간 겸 논설위원), 사)북방문제연구소(연구이사 겸 부소장) 등에서 근무하며 30여 년간 북한을 연구해 왔다.
주요 북한연구저서로는 <북에서 사는 모습(북한연구소, 1987)>, <인민이 사는 모습 1, 2권(자료원, 1996)>,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사회주의헌법 문장 연구(사단법인 북방문제연구소, 2007)>,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조선로동당 규약 문장 연구(북방문제연구소, 2007)> 외 다수 논문이 있다.
문학창작집으로는 서동익 소설집 <갱(坑, 자료원, 1996)>, 장편소설집 <하늘 강냉이 1∼2권(자료원, 2000)>, <청해당의 아침(자료원, 2001)>, <퇴함 1∼2권(메세나, 2003)>, <장군의 여자 1∼2권(메세나, 2010)>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청해당의 아침>이 1960년대 한국의 문화원형과 전후세대의 삶을 밀도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선정되어 2010년 6월 1일부터 한 달간 KBS 라디오 드라마극장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국내는 KBS AM 972khz로, 국외는 KBS 한민족방송망을 타고 중국 동북3성 ․ 러시아 연해주 ․ 사할린 ․ 일본 ․ 미국 등지로 방송된 바 있다.
고소설 편역작품집으로는 강도몽유록(OLIN, 2013), 달천몽유록, 원생몽유록, 안빙몽유록, 수성궁몽유록, 피생명몽록, 금오신화(OLIN,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