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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부인전

장지연 신소설

저자 장지연 선생이 ‘슝양산인’이라는 필명으로 1907년에 번역하여 발표한 《애국부인전(愛國婦人傳)》은 엄밀히 따지면 외국인이 쓴 소설을 우리나라 인물로 바꿔서 이야기를 전개시킨 번안소설 또는 역사 전기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한창 신소설이 출간되던 1907년 광학서포에서 초판이 간행되었고 내용은 총 10회로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는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백년전쟁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16세 프랑스 소녀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전공을 세우지만 후일 영국군에게 붙잡혀 이단으로 화형당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프랑스를 <법란서국(法蘭西國)>, 여주인공 잔 다르크를 <약안아이격(若安亞爾格)> 등 중국식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보아 이 소설은 아마도 “1차 한문으로 번역된 것을 ..
저자 장지연 선생이 ‘슝양산인’이라는 필명으로 1907년에 번역하여 발표한 《애국부인전(愛國婦人傳)》은 엄밀히 따지면 외국인이 쓴 소설을 우리나라 인물로 바꿔서 이야기를 전개시킨 번안소설 또는 역사 전기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한창 신소설이 출간되던 1907년 광학서포에서 초판이 간행되었고 내용은 총 10회로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는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백년전쟁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16세 프랑스 소녀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전공을 세우지만 후일 영국군에게 붙잡혀 이단으로 화형당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프랑스를 <법란서국(法蘭西國)>, 여주인공 잔 다르크를 <약안아이격(若安亞爾格)> 등 중국식 한자로 음역한 것으로 보아 이 소설은 아마도 “1차 한문으로 번역된 것을 매개로 저자가 2차로 번안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이 작품 역시 국권 피탈 직전에 다량으로 출간돼 나온 애국계몽소설 중 하나이며, 잔 다르크의 애국 사상과 희생정신을 강조하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권 수호 의지를 고취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군담소설 · 영웅소설 등의 전기소설과 유사하지만 개화기의 애국 계몽 신소설과 달리 순국문 표기를 채택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결국 이 소설은 1910년 한일 합병으로 국권이 상실된다는 위기의식의 확대와 함께 광범위한 독자층, 특히 여성 독자들을 겨냥하여 국권 회복 의지를 고취시키려 한 작자의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본서는 1907년 광학서포에서 출간된 장지연의 번안소설 《애국부인전》을 일반 독자들이 국어사전이나 옥편 없이 그대로 줄줄 읽을 수 있도록 고어체 원고를 현대어 가로쓰기 전자책(이펍 2.0) 판형으로 번역한 편역본(번역+가로쓰기 현대문 편집본)에다 최초 발표된 《애국부인전》초판본을 <책 속의 책> 형태로 삽입한 전자 도서이다. 그러므로 이 전자책 한 권으로 초판본 원본과 현대문 번역본을 대조해 가며 함께 읽을 수 있는 재미와 실리를 구현할 수 있다.
저자: 장지연(張志淵)

장지연(張志淵)은 1864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상주군 내동면 동곽리에서 아버지 장용상(張龍相)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학자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양반행세를 했지만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지윤(張志尹), 자는 화명(和明) · 순소(舜韶), 호(號)는 위암(韋庵) · 숭양산인(崇陽山人)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으나 해마다 겹친 가정 내의 풍파로 인해 상주의 어느 사찰에서 기식하기도 했고, 구미에 사는 친척 할아버지 댁에서 기식하며 글을 익히기도 했고, 친척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당시 영남에서 선비로 이름을 떨치던 허훈(許薰) 선생 아래서 글을 배우기도 했다.
1885년 21세 6월 향시(鄕試) 응제과(應製科)에 합격했다. 그러나 가을에 치러진 회시(會試)에서 낙방하였다. 이후 3~4차례 과거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1894년 30세 때 식년시(式年試)에 응시해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이 무렵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이 일어나면서 관직에는 임명되지 못하였다.
1895년 31세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의병궐기 호소 격문을 각처에 발송했다.
1897년 33세 때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청하는 만인소(萬人疏)를 기초했다.
1897년 사례소(史禮所) 직원으로 《대한예전(大韓禮典)》 편찬에 참여했고 이후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총무위원으로 활동했다.
1900년 36세 때 『시사총보』가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로 개편, 설립될 때 편집원으로 참여해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와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간행했다.
1901년 37세 때 다시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고, 1902년 38세 8월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유교연원(儒敎淵源)》《동국유사(東國類史)》 《대동시선(大東詩選)》 《농정전서(農政全書)》《일사유사(逸士遺事)》 《위암문고(韋庵文庫)》 《대한최근사(大韓最近史)》 《대동문수(大東文粹)》 《대동기년(大東紀年)》 《화원지(花園誌)》 등이 있다.
1921년 1월에 병을 얻었으나 회복되지 않고 더욱 심해지자 음식을 줄이고 술도 끊으면서 치료했으나 10월 2일 5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장지연의 출생과 더불어 향년 57세로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자세한 인생 여정은 본서 후미의 <장지연의 생애와 연보>를 참조하기 바란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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